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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사항

행저즐라 운동본부 씨즌2 - 지금은 성경시대 "유두고" 작성일 2016.04.26

성경에 나오는 인물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귀감이 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교회에 분명히 있습니다. 그런 사람을 발굴하여 격려하고 닮아가는 프로그램이 되면 좋겠습니다.


이 사람의 이름은 당시 하층민 가운데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이름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사람은 아마도 노예와 같은 비천한 신분의 사람이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이 사람의 이름은 신약성경 중 사도행전 20장에만 소개되는 이름입니다.

이 사람의 이름의 뜻은 '복되다', '다행이다'라는 뜻은 가지고 있습니다.

복되고 다행스럽게 이 사람은 3층에서 떨어져 죽었지만, 바울의 기도로 살아났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은 누가에 의해서 기록되었습니다.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성경은 그것을 기록한 기자의 특성이 상당부분 드러나 있습니다. 누가는 의사로서 세심한 관찰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의 이러한 특성이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에 자세하게 나타나 있습니다. 그 가운데 우리는 오늘 사도행전 20장 7-12절 말씀에 기록된 작은 에피소드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이 사람과 비슷한 사람이 공동체에 있습니까? 누구인지, 왜 그런지 문자 주시기 바랍니다.]

이 이야기는 바울 일행이 드로아에 있을 때 있었던 일입니다. '그 주간의 첫날'이라고 개역개정성경은 기록하고 있고, 개역한글성경은 '안식 후 첫날'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늘날의 일요일을 말하는데, 우리는 주일이라고 부릅니다. 이 날에 일어난 사건입니다.

바울이 다음날(월요일) 떠나기로 되어 있기 때문에, 떡을 떼기 위해 모인 자리에서 바울이 늦게까지 강론(설교)하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떡을 떼기 위해 모였다는 것은 성만찬을 위해서 모였다는 뜻입니다. 오늘날의 예배가 있었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바울의 설교는 상당히 길었습니다. 바울의 설교를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데, 첫부분의 설교는 밤중까지(7절) 계속되었고, 두번째 부분의 설교는 날이 새기까지(11절) 계속되었습니다. 즉 설교를 초저녁부터 시작해서 다음날 날이 새기까지 계속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설교가 조금만 길어져도 시계를 쳐다보고 안절부절 못하는 모습과 사뭇 대조되는 부분입니다. 이렇게 길게 설교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할까 생각해보았습니다. 누가는 7절과 9절에 '담화하다' '토론하다'는 뜻을 지닌 동사 '디알레고마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즉 질문과 대답의 형태로 되어지는 토론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혼자 말하는 형태의 설교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또 11절에는 '호밀레오'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장시간에 걸친 진지한 이야기' 혹은 '많은 대화'를 하였음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바울 혼자 설교하며 말하는 형태의 설교가 아니라 함께 토론하며 교육하는 형태의 설교를 했다고 보는 것입니다. 하지만 바울의 설교가 밤새도록 지속되었다는 것에 어느 누구도 비난했다는 것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만큼 설교에 깊이 빠져들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대화가 이러해야 하지 않을까요?

[이 사람과 비슷한 사람이 공동체에 있습니까? 누구인지, 왜 그런지 문자 주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길어지는 강론 가운데 유두고라는 청년이 나옵니다. 이미 말씀드린 것처럼 하층민 노예의 신분이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리고 하루종일 노동에 시달리다가 저녁에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여 나왔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는 위층 창에 걸터 앉아 있다가 깊이 졸았습니다.

많은 분들이 여기서 유두고를 비난합니다.

1. 세상과 교회 중간에 걸터 앉았다.

2. 졸았다는 것은 마귀에게 넘어갔다. 좋은 밭이 아니다.

3. 단단히 붙잡지 않았기 때문에 떨어졌다.

등등 많은 비난을 합니다. 유두고는 그래서 오래 산 것 같습니다^^;; 농담입니다.

하지만 전통적인 해석은 그렇지 않습니다.

1. 유두고는 하루의 노동을 끝내고 돌아온 상황이었습니다. 몹시 피곤함에도 불구하고 예배에 참석하여 늦게까지 말씀을 들었다는 것은 믿음의 사람이라는 증거입니다.

2. 유두고는 양보의 사람이었습니다. 방에 사람들로 가득찼기 때문에 자신의 자리를 요구하지 않고 창에 걸터 앉았던 것입니다. 아마도 노인과 부인, 어린아이들에게 양보하고 청년인 자신은 위층 창에 걸터앉았던 것 같습니다.

3. 환경적으로 어쩔 수 없었습니다. '등불을 많이 켰는데'라고 8절에 기록되어 있는데, 당연히 불을 켜면 산소를 소비하게 됩니다. 산소가 부족하니 졸릴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것도 3층에 있었으니, 위쪽이 더운 공기가 더 모여 졸릴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4. 창에 걸터 앉았다는 것은 그 상황에서 목숨을 걸고서라도 졸음을 이기고 말씀을 듣겠다는 의지가 강했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도 안전은 언제나 강조해도 부족하지 않습니다.

상대방의 상황을 이해한다면 함부로 비난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 사람과 비슷한 사람이 공동체에 있습니까? 누구인지, 왜 그런지 문자 주시기 바랍니다.]

유두고는 삼층에서 떨어졌습니다. 의사인 누가는 '죽었다'고 선언합니다. 의사의 선고입니다. 분명 유두고는 죽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내려가 그 위에 엎드려 그 몸을 안았습니다. 시체를 안았습니다. 사랑하는 마음이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를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생명이 그에게 있다'고 합니다.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유두고가 살아났습니다. 그리고 설교는 계속 이어집니다. 날이 새도록 이어집니다. 그리고 바울은 떠나갑니다. 바울은 떠나갔지만, 유두고는 항상 그곳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유두고를 바라보는 사람들마다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경험하면서 자신에게도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날 것이라 확신하며 위로를 받았습니다. 유두고에게 일어난 일은 자신에게도 유익이었지만, 다른 사람에게도 위로를 주는 하나님의 역사였습니다.

[이 사람과 비슷한 사람이 공동체에 있습니까? 누구인지, 왜 그런지 문자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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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그램 정보

행복한 저녁 즐거운 라디오
월~금 18:00~19:00
제작 곽금화PD / 진행 곽금화PD

행복한 6시, 멋진 하루를 복되게 보내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오늘도 방송가족 여러분을 응원합니다!